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최근 네이버 블로그에서는 한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네이버 블로그 20주년 이벤트로 “기록이 쌓이면 _____ 된다”라는 문장에서 빈칸을 채우는 이벤트를 진행 중에 있다. 내 블로그에는 다른 답변을 남겨 뒀지만 오늘은 다른 답변을 작성해볼까 한다. 나는 기록이 쌓이면 기억이 된다고 생각한다. 모두들 여행지에 가면 사진을 찍으며 여행을 기록하고, 이를 반추하며 기억을 회상하곤 한다. 이처럼 기록은 기억이, 기억이 기록이 되곤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도 이와 같은 맥락을 지닐 것이다.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되는 기억들이 몇 가지 있다.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사건과 사고들…….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 성수대교 붕괴 사고,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 세월호 침몰 사고, 최근의 이태원 압사 사고까지. 이런 사고들은 비단 대한민국에만 통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의 911 테러와 같은 사건도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건, 사고들을 기억하고 오래도록 추모한다. 추모는 사고를 기억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우리를 이들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그것이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하는 지점이다. 과연 미국은 911 테러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뉴욕의 심장부 한가운데 맨하튼에 있던 세계무역센터(쌍둥이 빌딩)는 2001년 9월 11일, 하루아침에 무너져 없어졌다. 이는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알카에다의 테러로 인한 것으로 세계무역센터에서만 20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으며, 펜타곤에서 일어난 테러와 비행기 탑승자를 포함하면 30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다. 이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으며, 2011년 주동자인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다. 세계무역센터의 붕괴는 미국에 큰 상처를 남겼다. 직접적인 피해를 겪은 사람들과 유족들을 말할 것도 없고, 직접적인 피해를 겪지 않은 뉴욕 시민들도 깊은 상실감을 느꼈으며, 미국 전역을 슬픔으로 물들였다.

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미국은 세계무역센터가 있던 자리에 추모 공원을 만들었다. 이곳을 통해 수많은 희생자들을 기리고, 사람들의 아픔을 보듬고 있다. 무너지기 전 세계무역센터가 있던 자리는 미국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미국 정부는 이런 곳에 다른 상업 공간을 만드는 대신에 이곳을 과감히 비우기로 결정한 것이다. 미국 911 메모리얼의 마스터 플랜은 다니엘 리베스킨트의 작품으로 그가 세계무역센터 자리를 비우는 건축을 생각했으며, 이를 토대로 마이클 아라드와 피터 워커는 ‘부재의 반추(Reflecting Absence)’라는 제목으로 건축물을 냈다. 세계무역센터 자리를 비운 부분에 끊임없이 물이 떨어지도록 디자인한 것으로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상실감과 부재를 표현하는 건축물이다. 이들은 의연한 태도를 슬픔을 받아들이며 끊임없이 부재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성수대교 희생자 위령비 위치 (네이버 지도 캡쳐)

반면 우리나라의 성수대교는 어떨까?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중 성수대교 희생자 위령비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사실 나는 성수대교 희생자 위령비 있는 곳을 지나야만 할머니 댁에 갈 수 있다. 그러나 관심을 가지기 전까지 그것이 위령비인지 알 수 없었다. 위령비는 그만큼 엉뚱하고 외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성수대교 희생자 위령비는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도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접근하기 힘든 곳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차를 타고 이동하지 않는 한 이곳에 걸어서 방문할 방법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아무도 위로 받지 못하는 추모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삼풍 참사 위령탑 위치 (네이버 지도 캡처)

성수대교 희생자 위령비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성수대교가 무너진 바로 앞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삼풍 백화점 참사 위령탑은 사고 장소에서 4km나 떨어진 양재 시민의 숲에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 삼풍 백화점이 있던 위치에는 ‘아크로비스타’라는 고급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섰다.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아크로비스타’와 삼풍 참사 위령탑은 거리가 상당하다. 과연 누가 이 먼 곳까지 와 삼풍 백화점을 위로할까. 아무도 위로받지 못하는 추모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이는 전형적인 추모를 위한 추모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의 911 메모리얼 파크와 완전히 대비되는 모습이다.

기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긴다. 아픔도, 슬픔도 기억해야만 한다. 우리의 기억력을 한정적이므로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이 휘발되기 때문에 기억을 기록해야 할 것이다. 미국 911 메모리얼 파크는 그들을 잊으려 하지 않고 자꾸만 상기하며 기억하고자 한다. 우리나라에도 희생자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그들을 기억하는 방식은 확연히 다르다. 그것도 아주 최악의 방식으로. 우리 학교 뒤 와우 공원 자리에 아파트 붕괴 사고가 있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볼 차례이다. 최근의 세월호 침몰 사고나 이태원 압사 사고는 과연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이전의 사건과 사고들은? 우리는 이것에 대해 골몰해야 할 차례이다. 우리의 기억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를 생각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