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끝자락에서, 조나단 라슨이 남긴 이야기

Fear, or Love?

영화 <틱, 틱…붐!>을 보고

한 일주일만 지나면, 전 서른 살이 돼요.
8일 후면 내 청춘은 영원히 끝나는데
난 해놓은 게 뭐죠?
생일 축하해.
제기랄, 90년에 30살이야.

영화 <틱,틱…붐!> 중 ‘30/90’

여러분은 음악 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넷플릭스 영화 <틱, 틱…붐!>은 뮤지컬 극작가이자 작곡가 조나단 라슨의 전기를 다룬 영화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존’이다. 영화 <틱, 틱…붐!>은 실제 뮤지컬 공연 ‘틱틱붐’의 무대를 재현하며, 조나단 라슨이 공연 사이사이에 자신의 지난 시간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는 존이 준비되지 않은 30살 생일을 맞이하며 넘버 ‘30/90’을 부른다. 언제나 뮤지컬 영화의 오프닝은 화려하고 웅장하기 마련이다. 브로드웨이를 뒤바꾼 위대한 극작가 조나단 라슨의 이야기라니. 그 시작을 알리는 장면을 보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출처 : 네이버 블로그 MOSICA MUSIC

…노래하는 스파이더맨?
앤드류 가필드가 이렇게 노래를 잘 하는지 몰랐다.

tick, tick… BOOM! | Andrew Garfield “30/90” Official Song Clip | Netflix – YouTube
Jonathan Larson – tick tick BOOM – rock monologue – YouTube

– 실제 조나단 라슨의 영상이다.

차치하고, 이 영화의 이야기를, 그보다도 조나단 라슨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존은 자그마치 8년을 바친 자신의 뮤지컬 <슈퍼비아>의 워크숍을 앞두고, 불안감 속에 시계 소리만 들린다.

‘틱… 틱…’

그는 식당에서 서빙 알바를 하며 생계를 유지 중이다. 가난하지만, 뮤지컬을 공연하고 싶은 꿈이 있는 청년이다. 존의 여자친구 수잔은 존과 함께 뉴욕을 떠나 가정을 꾸리기를 원하지만, 존은 수잔에게 어떠한 답도 하지 못한다. 그의 친구 마이클은 한때는 배우였지만 배고픈 예술가의 길을 포기하고 잘나가는 광고회사에 들어가 호화롭게 살고 있다. 존은 마이클이 사는 럭셔리 초고층 아파트를 구경하고는 이렇게 말한다.

“주차 요원이 있는 아파트라뇨.
로비에 놓인 싱싱한 꽃
반려견을 안은 백인 노부인
이게 진짜 인생인가?”

자신과는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사는 친구를 보며 더욱 비참함을 느끼고 갈등하는 존. 이러한 모습을 뮤지컬 영화답게 유쾌하게 그려낸다.

결국 존은 마이클의 제안대로 광고회사 세미나에 참여하여 광고 음악을 만들어보려 한다. 그러나 그는 사람을 꼬드겨 원치 않는 물건을 사게 만드는 광고음악 따위를 만드는 것과는 맞지 않았다. 세미나를 망치고 돌아온 존과 그것에 화가 난 마이클이 언성을 높이며 싸운다. 나는 이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안정적인 삶을 살며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을 지키고자 하는 마이클, 불안정하지만 뮤지컬이라는 들끓는 꿈을 지키고자 하는 존. 나라면 과연 어떠한 선택을 할까. 돈인가 예술인가, 현실인가 꿈인가?

그렇게 존은 자신의 작품 <슈퍼비아>에 이전보다 더 집착한다. 수잔과 대화할 시간은 줄어들고, 감정의 골은 깊어져만 간다. 워크숍의 성공과 함께 새로운 삶을 바라는 존은 긴장과 두려움으로 날카로운 신경과민 증상을 보인다. 워크숍은 다가오는데, 곡은 도무지 써지지 않는다.

‘틱…틱…’

마침내 그는, <슈퍼비아>의 워크숍을 성황리에 끝낸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답변은 냉정했다.

“Sharpen your pencil.”

즉, “다른 새로운 작품을 써라.”

이것이 작가의, 창작자의 숙명일까? 좌절감과 비통함으로 잠겨 존은 방황한다. 수잔은 떠나고, 설상가상으로 마이클은 HIV(에이즈)양성으로 판정되어 오래 살 수 없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의 또 다른 친구들도 세상을 떠난다. 존은 차갑고 깜깜한 밤, 텅 빈 야외 무대에서 피아노를 친다. 이 장면은 어떠한 장면과 비교할 수 없이 비통하다. 이보다 더 슬플 수는 없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연필을 깎는다.

다음 작품은 바로, ‘틱틱붐’. 이후에는 한동안 미뤄놨던 ‘렌트’를 다시 쓰기 시작한다.

‘렌트’는 브로드웨이에서 12년간 공연됐고, 뮤지컬의 정의를 바꾸어 놓았다.

노래의 형식, 스토리의 형식을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그는 ‘렌트’를 보지 못한다.

공식 오프닝 전날 밤, 대동맥류 파열로 사망한 것이다.

그의 나이는 35살이었다.

그가 살아있을 때, 꿈을 포기하려고 했던 순간 친구 마이클이 했던 말이다.

“나이가 차면
더 이상 서빙하는 작가가 아니라
글 쓰는게 취미인 웨이터가 되는거야.”

“너 자신한테 이걸 물어봐.
널 움직이는게 두려움이야, 사랑이야?”

No Day But Today

뮤지컬 <렌트>를 보고
출처 : 포토뉴스 (2009.08.10)

이제 조나단 라슨의 작품 <렌트>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뒤바꾼 <렌트>는 조나단 라슨이 오페라 ‘라 보엠’을 현대 슬럼가라는 배경에 맞춰 재해석한 작품이다. <렌트>는 조나단 라슨 자신과 친구들이 겪은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이는 ‘렌트비’를 내지 못해 전기마저 끊겨버린 가난한 삶, 현실의 어려움을 잊기 위해 걸려든 마약 중독, 그리고 사회로부터 외면당한 성 소수자들의 상처와 에이즈라는 병 등 공연작품으로 다루기에는 불편한 어두운 현실과 사회적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잃어버리지 않는 젊은이들의 열정과 사랑을 ‘록’과 다양한 장르의 대중음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김려원,2012) 그가 마지막 작품으로(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는 모르지만) 자신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쓴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기고 떠났는가?

실제로 이 뮤지컬의 시놉시스를 보면, 어떠한 기-승-전-결의 스토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렌트>의 주인공들을 소개하려 한다.

로저 록 밴드의 리드 싱어이다. HIV(에이즈) 양성 반응자로 자신이 죽기 전에 의미 있는 곡을 쓰고 싶어한다.
마크 로저의 룸메이트이다. 영화 제작자이자 비디오 아티스트이다.
미미 에이즈 환자이며 약물중독인 댄서이다. 로저와 사랑에 빠진다.
모린 자유분방한 행위 예술가이자 양성애자이다. 마크의 전 여자 친구이며 현재는 조앤과 사귀고 있다.
조앤 꼼꼼하고 치밀한 성격의 공익 변호사이다. 모린의 현재 연인이다.
앤젤 여장을 한 거리의 드러머로, HIV 양성 반응자이다.
콜린 HIV 양성 반응자이며 컴퓨터 천재이다.
베니 로저와 마크의 옛 친구이자 이들이 사는 건물의 집 주인이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이는 지극히 표면적인 소개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모두 집세를 내지 못하는 가난한 예술가들이며, 에이즈라는 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불안정하며, 당장의 내일을 알 수 없다. 나는 <렌트>를 관람하기 전 인물의 관계도라던가, 캐릭터 소개를 미리 찾아보지 않았다. (절대 귀찮아서 그런 것은 아니다.) 미리 시놉시스와 인물 관계도를 익혀야만 재밌게 관람할 수 있는 극이 있는 반면, <렌트>와 같이 관람하는 도중에 인물들의 관계나 특징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는 극도 있다고 생각한다. <렌트>는 워낙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고, 나는 원래도 이 극의 넘버들을 좋아했기에 대강의 내용만 알고 있는 상태였다. 이 뮤지컬에는 다인원이 등장한다. 때문에 스토리가 다소 난잡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나도 극을 관람하며, 특히 1막에서는, 스토리가 이해가지 않고 복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막 엔딩 때문에 2막까지 관람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뮤지컬의 1막 엔딩은 예로부터 관객들의 발걸음을 묶어두기 위해 가장 화려하고 임팩트 있는 넘버를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 캐릭터 각각의 스토리를 보여주는 구성은 작품을 보며 지루할 틈이 없도록 한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기존의 기-승-전-결의 구성을 기본으로 하는 전통적인 플롯 창작에 대한 반례가 된다.

<렌트>의 주제는 ‘사랑’이다. 흔하디 흔한 주제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렌트>에서는 사랑을 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일에 대한 사랑, 가치에 대한 사랑, 친구와 이웃에 대한 사랑. 이것은 때로 열정, 야망, 자존감, 우정 등으로 불린다. 어쩌면 이것들의 근본이 바로 ‘사랑’일지 모르겠다. 극중에서 로저-미미, 콜린-엔젤, 모린-조엔은 연인관계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나는 남녀간의 사랑보다 위에서 말한 것들에 대한 사랑이 더 주제와 가깝다고 느껴졌다.

엔젤은 특히 주목할만한 인물이다. 엔젤은 동성애자인 동시에 에이즈 환자이다. 사회적으로 가장 공격받을 수 있는 캐릭터이며 소수자라고 할 수 있는 엔젤을 조나단 라슨은 극의 전면에 내세운다. 그러고는 엔젤을 통해 극의 주제인 ‘사랑’을 전달한다. 뮤지컬에 여장남자가 등장하는 것이 어색할 수도 있겠다. 나도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점점 엔젤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그 이유는 엔젤이 그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지닌 인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엔젤의 당당하고 솔직한 태도는 그(그녀?)를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엔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 속에 살아가는 친구들에게 ‘당신은 오늘, 나를 위한 내일’이라며 절대적인 사랑을 베푼다. 엔젤은 극중에서 콜린과 연인관계인데, 그에게도 대가없는 사랑을 준다. 그들의 순수한 사랑때문에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낀다. 매 순간 충실하게, 솔직하게 사랑하는 엔젤의 태도는 그의 친구들에게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그러나 엔젤은 에이즈라는, 당시에는 고칠 수 없는 병을 앓고 있었기에 오래 살지 못한다. 우리에게 진정한 사랑을 알려주고 떠난 것이다. 엔젤의 이름이 ‘엔젤’인것도 어쩌면 이러한 의미였을까. 그리고, 조나단 라슨에게 마이클이 엔젤과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실제로 마이클은 동성애자였다.)
엔젤의 장례식장에서 부르는 노래가 바로 그 유명한 ‘Seasons of Love’이다.

Seasons of Love – YouTube

나는 1막이 끝나고부터 비로소 이 극의 메시지가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엔젤이 죽고, 친구들은 슬퍼하며 각자의 삶을 한다. 그들은 당시 부패한 교회가 말하는 사랑, 돈과 권력에 대한 사랑과 대비되는 진정한 사랑을 보여준다. <렌트>의 인물들은 모두 솔직하다 못해 자유분방하며 때로는 주체할 수 없는, 한마디로 발랑 까진 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든 이들을 미워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누구보다 진정한 사랑을 하는 이들을 보며 가슴 깊숙히 울림을 느끼고 나도 비로소 이들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렌트>는 1990년대 뉴욕의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다. 약 1년간, 그의 친구들은 죽거나, 죽다가 살아나거나, 사랑을 찾거나, 버렸다가 다시 찾으러 돌아오거나, 여전히 사랑을 한다. 이것이 시놉시스의 전부이다. 극의 탄탄한 스토리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면, 처음에는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극이 끝나고 나면 밀려오는 감동을 느낄 것이며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자연히 생각하게 될 것이다.

유한하고 불안정한 인생을 사는 것은 그들만이 아니다. 우리도 어쩌면 당장의 내일을 알 수 없는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내일을 걱정하며 미래를 위해 노력한다. 그러면서 때로는 감정을 숨기고, 나를 속이고, 현재를 놓치고 살아간다. <렌트>는 우리에게 매 순간 충실하게 사랑할 것을 말한다. 그 대상이 누구이든, 무엇이든지 말이다. 에이즈가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닌 지금에도, 이 메시지는 우리에게 강렬한 울림을 준다.

La Vie Boheme – YouTube

– 1막 엔딩곡인 ‘La Vie Boheme’. 뉴욕 슬럼가의, 자유로운 예술가들이 부르는 노래이기에 가사는 다소 자극적일 수 있다. 자유로운 영혼, 보헤미안으로서의 그들의 인생을 긍정하고 있다.